중국에는 결혼과 같은 경사가 있을 때 흔희 기쁠 희(喜)자 두개를 이어쓴 문양을 대문에 붙여놓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의 내력은 송(宋)대 재상이었던 왕안석으로부터 비롯된다.
20세 되던 해 과거길에 오른 왕안석은 어느 지방을 지나다가 우연히 어느 집 대문가에 [말이 달리는 등(走馬燈), 등안에 말이 달리네(燈馬走), 등이꺼지면 말도 멈추네(燈熄馬停步)]라는 싯귀가 붙여져 댓구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싯귀를 본 왕안석은 그 절묘함에 손뼉을 치며 감탄하고는 시험장으로 발등을 재촉했다.
과거시험에 임한 왕안석은 단숨에 답안을 완성하여 감독관에 제출하였고 왕안석의 천부적인 총명함을 알아본 감독관은 즉흥적으로 그를 불러 면접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감독관이 대청에 걸린 호랑이 그림의 깃발을 가리키며 [호랑이가 나는 깃발(飛虎旗), 깃발안에 호랑이가 나네(旗飛虎), 깃발을 말아두면 호랑이도 몸을 숨기네 (旗卷虎藏身)]라는 시를 내려 왕안석의 재치를 시험했고, 왕안석이 지체없이 [走馬燈, 燈馬走, 燈熄馬停步]라고 대응하자 감독관은 그의 기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왕안석이 돌아가는 길에 어느집 문가에서 본 싯귀 덕택에 면접을 무사히 통과한 것을 고맙게 여겨 다시 그 집앞에 다다랐을때 마침 그 집 주인인 세력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댇수를 지어줄 것을 청하는 세력가에게 왕안석은 [飛虎旗, 旗飛虎, 旗卷虎藏身]라고 댓구를 지어 보였고 그 세력가는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고 길일을 잡았다.
연고인즉슨 세력가는 이처럼 어려운 댓구를 능히 지어낼 수 있는 총명한 사람을 사위로 삼기 위해 일부러 반쪽짜리 싯귀를 집 앞에 내건 것이다.
그래서 왕안석은 이 세력가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식 당일날 그의 과거급제라는 희소식이 전해진다. 결혼이라는 경사에 과거급제라는 경사가 겹친 왕안석은 기쁨에 겨워하며 붉은 종이위에 두개의 희(喜)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로부터 세상에는 경사스러운 날에 대문에 두개의 희(喜喜)자를 붙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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