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흙같은 밤,
갑자기 커다란 폭음이 울리며 집이 진동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연달아 꽝꽝소리와 따다다 기관총소리가 쉴새없이 귀를 어지럽힌다.
창밖을 내다보니 여기저기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TV에서 보던 미군의 이라크 공습과 흡사한 현상이 내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전쟁상황이 아니다.
春節(=중국의 설날)을 기리는 중국인들의 대표적 풍습인 불꽃놀이와 폭죽터뜨리기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터같은 풍경이 설날 당일보다 음력 초닷새(=1월5일)에 그 강도를 세게 느낀다.
이날은 재물신을 영접하는 날로, 그 표현으로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놀이를 아주 심하게 하는 것이다.
1. 일반인도 쉽게 불꽃놀이 할 수 있다.
한국적 관념에서 보면 불꽅놀이는 모모 단체가 집행을 하고 서민들은 이것을 관람하는 차원이겠으나
이곳 중국에서는 누구나 어느곳에서나 불꽃놀이를 할 수 있다.
이맘때쯤 되면 길거리 어느곳에서도 쉽게 그 재료를 구할 수 있는데, 구하기는 쉽다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아름쯤 되는 세트. 즉, 한번 불을 붙이면 2분여쯤 연달아 불꽃을 날려주는 세트가 한국돈 10만원쯤 한다.
말이좋아 10만원이지 이곳 기준으로는 4년제 대졸 초임의 20% 수준에 육박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적잖은 금전자원을 허공에 쏳아올리는 것이다.
풍속과 문화와, 또 재물을 기원하는 강한 소원이 이 불꽃들을 허공으로 날리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위 사진들은 시끄러운 그날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각각 다른방향의 창문을 열고 찍은 사진들이다. 동서남북 어느쪽 창문을 보아도 쉽게 불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동네 어느곳에서도 과감하게 불꽃을 날린다.)
2. 설날과 정월대보름은 한 세트다.
한국에서는 엄연히 별개의 명절이지만 이곳에서는 하나의 세트로서 주욱 이어간다.
따라서, 춘절이 끼는 달이면 많은 인민들이 회사일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20일씩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3. 폭죽놀이의 잔존물(=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
아니, 치우면 안된다.
폭죽놀이를 하고난 장소에는 그 잔존물들이 길바닥에 수북히 쌓인다. (오른쪽 그림)
그러나 이것을 재물의 흔적이며 매개로 인식하므로
불가항력적인, 예컨대 청소부 아저씨 등등 에 의해 치워지는 것은 마지못해 모른척 하지만
스스로 치우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정월대보름이 될 때까지 마당에 빨간색 잿더미가 수북히 쌓여있는 것은 남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월 초하루에 먹은 음식들의 잔존물. 즉, 각종 쓰레기며 설겆이감도 예외는 아니다.
4. 센스 하나, 자동차는 원격시동 경보기가 아닌 수동으로 잠궈놔야 맘이 편하다.
수동으로 잠궈놓은 덕분에 내 차는 밤새 안녕하실 수가 있었다.
리모컨으로 잠궈놓은 차들은 폭죽이 터지는 순간
그 엄청난 폭음과 진동으로 인하여 빽빼액~! 울기 시작하여
쌍라이트를 깜빡대며 밤새도록 고통스런 소릴 질러댄다.
비단, 춘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의 집집마다 빨간색으로 福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붙여놓는 풍습이 있다.
이는, 뒤집는다는 뜻의 倒가 도달한다는 뜻의 到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福이라는 글자를 뒤집어 놓는 것으로
福이 내 가정에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내가 살고있는 맞은편 집 문에 붙어 있는 거꾸로 福)
어쨌든 종교적이나 관습적인 주관을 떠나면
이네들의 춘절을 지나는 풍습은 오히려 순진하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잠못들 수 밖에 없는 이밤에 몇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되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이질스럽다 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가진 것의 적잖은 부분을 하늘로 띄워보내 불태워 버리면서도
그보다 더 큰 희망과 소원을 꿈꾸는 이들의 덜(?) 각박함이
오히려 값어치있게 느껴질 뿐이다.
중국에 있는 내 친구들과 주변들아,
내적인 풍부와 외적인 풍요가 너희들의 바램 이상으로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Comments List
북경공항도 한국어로 되어있답니다. -0-;; 근데 제 기억에 상해공항도 한국어로 되어있던거 같은데(작년 여름에 갔을 때 말입니다. 사실 별로 신경은 안 써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청도.....맥주제할 때 꼭 간다고 간다고 하는데 아직 못갔군요. 청도에 집이 있는 친구들도 이미 군대에 가버렸고-_;; 그냥 예전에 놀러? 강의하러? 갔던 기억이나 떠올리면서 흐뭇해 보렵니다^^ 그런데 청도는 이미 한국이라고 할 수있겠죠. 마치 예전 통일 신라 시대에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처럼 말이죠^^;;;
그렇군요. ^^ 북경은 사실 가본지 오래되었고, 기억도 가물가물...
청도공항의 표지판은 한글이되, 그곳 현지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은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인상이 안좋은 원인이 대략은 감잡히나 그걸 일일히 거론하는 것도 좀 그렇구요.
아무튼 중국인과 한국인이 서로 잘 도와서 win-win하기를 바랄 뿐이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